
|개화기 적온에 착과량 뚝... "농업재해 인정해야"
“배 열매솎기(적과) 시기인데, 적과할 게 없습니다.”
7일 전남 나주시 금천면의 한 배 과수원. 이맘때면 어린 열매를 솎는 적과작업으로 손이 바빠야 할 시기지만, 채승필씨는 나무 아래에 선 채 눈시울만 붉혔다. 가지마다 어린 배가 달려 있어야 할 때지만, 과수원 곳곳에선 열매가 맺히지 않은 가지가 쉽게 눈에 띄었다.
채씨는 “착과량이 지난해의 20% 수준에 그친다”며 “지금 달려 있는 열매 중에도 기형과가 상당수 섞여 있어 정상 상품으로 출하할 수 있는 물량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은 지대가 상대적으로 높고 볕도 잘 들어 그동안 저온피해가 와도 이 정도까지 망가진 적은 없었다”며 “명백한 자연재해”라고 한숨을 쉬었다.
배 주산지인 나주 일대에서 저온현상에 따른 착과 불량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나주배원예농협은 자체 조사 결과, 금천·산포·세지·왕곡면에서 피해가 집중됐는데, 심한 곳은 착과율이 평년의 10~30%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농가들은 개화기 무렵 우박과 갑작스럽게 닥친 저온현상으로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4월 6일엔 우박이 쏟아지고 4월 8일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까지 내려갔다.
김병식 배생산자협회장은 “개화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2시간 만에 암술이 고사한다”며 “인공수분 작업 이후에도 한낮 기온이 12~13℃로 낮아, 화분관 생육 저조로 인해 수정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저온피해는 나주 배뿐 아니라 인근 과수 재배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전남 곡성 옥과면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이기종씨는 “개화기 때 기온이 뚝 떨어져 암술이 불에 그을린 듯 검게 말라 죽었다”며 “피해율이 70~80%로 추산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미세살수장치, 방상팬 등 저온피해 예방 장비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농가 입장에선 도입 비용이 부담이다.
이씨는 “방상팬이 노후화돼 교체가 필요한데, 한 대에 1500만원이다. 과수원 규모가 1만1570㎡(3500평)으로 6대가 필요한데, 보조 지원을 받아도 50%는 농가가 부담해야 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박지영 나주배원예농협 상무는 “농가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 고령화로 인해 선뜻 추가 설비 투자에 나서기가 어렵다”며 “여기에 국제 정세 불안으로 비료·포장재 등 농자재 가격이 지난해보다 20%가량 오른 것도 농가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벌써 내년 농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착과량이 지나치게 적으면 나무가 열매 대신 새순과 가지를 키우는 데 양분을 쓰면서 생육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다.
이 경우 이듬해 꽃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개화와 착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농가들은 상품성이 낮은 열매라도 일정 부분 남겨 수세를 조절하려 한다.
문제는 농작물 재해보험 피해보상이 착과량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이런 복잡한 사정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평년에 열매 100개가 달렸는데, 올해 상품성이 없더라도 100개가 열리면 피해가 없는 것으로 된다.
이상저온으로 착과량이 크게 줄어든 해는 ‘평년착과량’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병식 협회장은 “올해처럼 착과량이 극히 나쁜 해의 수치가 보험 산정 기준에 반영되면, 향후 비슷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남도는 7일부터 저온피해 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개화기와 맞물려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졌던 나주·곡성·장성·순천이 대상이다. 도는 각 시군의 피해 자료를 취합해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업재해 인정을 건의할 계획이다.
농민신문, 이시내 기자,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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