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취업정보

취업정보

lnb영역

취업정보

컨텐츠 내용

  1. 학습지원센터
  2. 취업자료실

취업자료실

취업자료실 조회 페이지
[중앙일보] 매출 3억, 나무 의사 아시나요?…IT맨의 '환승 직업' 비결 학습관리자 / 2024.04.02

 

“이게 주목인데, 천 년 주목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요 잎이 파랗지 않고 약간 누리끼리한 건 나무 진드기 응애 때문이에요. 그 옆이 배롱나무인데 추위에 약해서…”

경기 성남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나무에 대해 얘기하는 이승언(53)씨의 입은 속사포였다. 이씨는 갓 태어난 아이의 손가락을 받치듯 조심스럽게 이파리를 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얘가 히어리 꽃을 피울 텐데 엄청 예뻐요. 꽃뿐만이 아니라 잎도요.”

이씨가 단순한 나무 ‘오덕’은 아니다. 이씨는 나무의사, 병자(病者)가 아닌 병목(病木)을 살피는 게 업(業)이다. 그는 원래 IT업계의 수퍼맨이었다. 20여 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의 옛 직장은 ‘빅블루(Big blue)’란 별칭으로 유명한 한국 IBM이다. 지금으로 치면 AI업계 선두주자 엔비디아와 같이 상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글로벌 대기업을 다녔다. 최첨단 IT맨에서 나무의사로 변신한 그의 ‘직업 환승’의 모든 것을 들여다봤다.

지난 2월 19일, 이씨의 ‘왕진’ 현장을 따라다녔다. 이씨는 청진기를 대듯 고무망치로 나무를 두들겼다. 나무를 두들겨 나는 소리로 속이 썩어 빈 곳이 있는지, 줄기는 튼튼한지를 알기 위해서다. 병원의 CT·MRI처럼 첨단 장비도 동원한다. 바늘같이 뾰족한 장치를 줄기에 꽂아 전류를 흘려보내서 나무의 활력 정도를 측정하는 ‘TS(Tree & Soil) 미터’ 장비다. 이씨는 전동 드릴로 나무에 작은 구멍을 내고, 영양제를 꽂았다. 이씨는 “나무주사(수간주사)인데, 사람이 아프면 주사를 맞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만약 나무의 상태가 심각하게 좋지 않으면, ‘외과 수술’도 한다. 전기톱으로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약을 친다.

이씨의 첫 직장 IBM은 외국계 초대형 IT기업이었다. IT업계에서만 20년을 일했다. 새벽부터 자정을 넘겨서까지 시스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매일같이 컴퓨터와 치열하게 씨름을 벌였다. 그런 이씨의 눈에 들어온 건 늘 푸른 초록의 나무였다. 이씨는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까 자연을 찾게 되더라고요. 나무는 정적이잖아요. 나무는 뭘 해달라고 디맨딩(demanding·요구가 많은)하지 않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무의사 제도는 수목 치료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2018년 도입됐다. 나무의사 자격증을 딴 건 2021년, 그가 49세일 때다. 먼저 이씨는 나무의사 시험 응시 요건을 갖추기 위해 식물보호 산업기사 자격증을 땄다. 이씨는 “식물보호 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려면 관련 학과 경력이 필요한데, 학점은행제나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 등 관련 학과로 편입하는 방법이 있다”고 귀띔했다. 나무의사 양성기관에서 150시간 교육 과정 이수도 해야 한다. 양성기관은 수도권 3곳을 포함해 전국에 13곳이 있다. 나무의사 자격시험은 ‘고시’급이다. 지난해 진행된 9회 차 시험까지의 평균 합격률이 1차(필기) 17%, 2차(실기) 48% 수준이다. 1차 시험은 수목병리학·해충학에 산림토양학 등 5과목이 객관식 오지선다형으로 출제되고, 2차는 수목 피해 진단 및 처방을 논술·단답형으로 답안을 써낸다.

나무의사 자격증을 딴 뒤 2022년 이씨의 첫 직장은 한 나무병원의 ‘인턴의’였다. 나무병원 인턴들의 월급은 3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주변에선 전직을 응원하는 이는 없었다. “잘 다니는 좋은 직장 있는데 뭣 하러 (나무의사를) 하나”라는 말이 끊임없었다. 월급 나무의사로서 1년여 경력을 쌓은 뒤 지난해 2월 병원을 세웠다. 2022년 전국의 나무병원 평균 매출액은 3억7198만원 수준이다. 정년도 없다. 이씨는 ‘직업 환승’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반드시 올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현실과 언제까지 타협할 것인가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하세요. 직장 그만두고 준비하는 건 위험합니다.”

 

중앙일보, 나운채·이수민·석경민·김민정 기자, 2024-03-24
링크주소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7473